코로나19 시대, 생사를 초월한 장자의 삶을 배우다.

2020. 5. 24. 18:39일상다반사

지금으로부터 2300년전 중국의 전국시대에 장자라는 사람이 살았다. 도가 사상의 핵심적 인물로 그의 제자들이 "장자"라는 이름의 책을 편찬하였는데,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 장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여 여러가지가 있을만큼 해석은 어렵다. 여기서는 장자가 사람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기본 사상 중 특히 생사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장자는 기존 질서, 사회 시스템, 진리 등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 기성복으로 만들어진 옷에 우리의 몸을 맞춰야 하듯, 사람들은 기존 질서, 사회 시스템 등에 적응하도록 교육받고 살고 있다. 장자는 그러한 것을 기본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장자는 군주 밑에 들어가길 거부했으며, 초야에 묻혀 자연과 함께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 장자는 삶과 죽음에서도 자유로웠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 조차 금기시 되어있다. 우리 주위에는 죽음과 연상되는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죽음과 괴리되어 있어서 우리는 죽음을 잊고 산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다른 동물들의 죽음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보면, 어떤 생명의 죽음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사회 시스템이 죽음을 공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세계가 떠들석 하다. 감염이 죽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하여 실제 죽을 확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과거 의학기술이 발전되기 전에는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왜 코로나19에 걸릴 확률도 낮고, 걸리더라도 죽음에 이를 확률도 매우 낮은데 사람들은 공포를 느낄까? 우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 감염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또 감염될 경우 치료할 방법이 마땅히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어차피 모두 때가 되면 죽는데, 다른 사고, 예를들어 교통사고로 죽는 확률도 엄청 높은데,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알고보면 그리 두려워 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모두 죽는다.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장자는 부인이 죽어 상을 치를 때 슬퍼하며 곡을 하지 않고, 오히려 노래를 불렀다. 문상을 온 친구 혜시는 아내가 죽었는데 노래부르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장자는 "그녀는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슬퍼할 일이 아니다."라고 답변한다. 그저 자연에서 시작된 삶이 자연의 원리에 따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자 자신이 죽을 때, 제자들에게 자연장을 치르라고 지시한다. 시신을 관에 담아 땅에 묻지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고 자연속에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묘를 파 시신을 묻고 묘비를 세워봤자 어차피 땅속의 벌레에 의해 몸이 훼손될 것이며 아름다운 관이나 묘비 등은 인위적인 것이므로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감염의 공포와, 사회적 스트레스, 죽음의 공포 등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장자의 삶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어차피 코로나19도 자연의 일부이며, 대자연의 순환에 몸을 맡기며 장자처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